문학소년단 열세 번째 책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책을 자주 접하지 않았던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책이었지만,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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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줄거리
주인공인 도리언 그레이는 소위 말하는 '존잘'이다. 화가인 바질 홀워드는 그를 모델로 한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바질의 친구인 헨리 워튼 경은, 화가의 말을 듣고 도리언 그레이를 만나보기로 결심한다. 도리언은 헨리와 이야기를 나누며 베프가 되는데... 도리언은 우연히 공연을 보러 갔다 연기력이 뛰어난 '시빌 베인'이라는 여배우를 좋아하게 된다. 그녀와 결혼을 할 거라며 다짐을 하고, 그녀의 공연에 바질과 헨리를 초대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발연기를 시전하고 이에 실망한 도리언은 시빌 베인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다음날, 시빌 베인은 자살을 하게 되었다. 우연치 않게 바질이 그려준 초상화를 본 도리언. 매우 뛰어난 작품이었던 그 초상화는 일그러져 있었다. 초상화가 완성되었을 때, 도리언은 초상화 속 본인의 모습처럼 평생 젊음을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정말 본인의 얼굴은 늙지 않지만, 초상화는 점차 못 볼 꼴이 되어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30대가 된 도리언. 그러던 어느 날, 바질이 파리로 떠나기 전 도리언을 찾아온다. 마을에 도리언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가 많아 걱정이 되어 왔는데, 이야기하다 그가 그려준 도리언의 초상화를 보게 된다. 일그러진 초상화를 보면서 얼른 하나님께 용서해야 한다고 다그치지만, 도리언은 화를 참지 못한 채 우발적으로 바질을 살해하게 된다.
바질의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옜 친구인 앨런 캠벨을 부른다. 그의 과거를 볼모로 살인의 증거까지 모두 없애버린 도리언. 도리언은 선행을 통해 초상화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려 하지만, 그럴수록 초상화 속 도리언의 모습은 더욱 흉측해진다. 마침내 초상화를 칼로 찢어버리려는 도리언. 그가 칼로 초상화를 찢은 순간, 비명소리가 들리고, 소리에 놀라 올라간 하인의 눈에는 바질이 그렸던 매력적인 초상화와 초라하게 늙어 죽어버린 도리언이 비추면서 책은 마무리된다.
책에 관한 이야기
책의 전반부를 읽을 때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여러 소설을 읽어보았지만 19세기 서양 귀족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가장 이해가 안 가고 지루한 부분인데, 이 책에도 '교양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꽤 많아 불편했다. (그렇다고 그 부분이 내용 전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도 않았다.)
도리언과 시빌베인의 사랑이야기부터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더니, 나머지 3/4 부분은 다음 내용은 뭘까? 궁금증을 자아냈다. 책의 내용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자면 1. 젊음 2. 사랑 3. 우발적 행동 4. 죽음에 대한 두려움 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1. 젊음
어렸을 적 도리언은 자신의 초상화를 보면서, 저 초상화처럼 본인도 늙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젊음을 추구하는 것은 어느 시대와 관련 없이, 모두가 추구하는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한다. 아직 20대인 나는 충분히 젊다고 느끼지만, 갓 스무 살 때의 풋풋함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
딱 작년 가을. 더이상 나이가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면 뭔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고 느끼는데, 30살까지 이제 2살 남았기 때문이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것과 달리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것은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걱정이 머릿속에 남는다. 생각해보면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변하는 10년 전과는 달리, 회사 생활을 계속할 텐데 말이다. 아마 30대 때에는 결혼, 육아 이런 걱정이 앞으로 더 크게 느껴져서 두려움이 더 크게 나타나는 걸까?
초상화에 세월의 흔적을 남겨두고 젊음을 유지하는 도리언의 모습에서 전에 읽은 다니엘 콜의 「봉제인형 살인사건」이 떠올랐다. <파우스트 거래> 처럼, 소원을 하나 들어주는 대신, 나중에 무언가를 잃게 되는 것. 결국 모든 일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2. 사랑
책에서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던 부분. 도리언과 시빌 베인의 만남.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서로 감정을 친구와 가족에게 말하는 장면은 정말 사랑이 빠진 사람이 아니고선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종종 친구들을 만나면 본인의 여자/남자 친구를 자랑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되게 질투를 하곤 한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얘네 꼭 이럴 필요까지 있어?'라고 할 정도로 질투심이 뿜뿜했다.
그렇지만, 발연기를 보고 도리언이 이별통보를 하는 장면에서 시빌 베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인은 직업으로서 사랑 연기를 해왔었는데, 도리언을 만나고 나서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다고. 그래서 사랑 연기는 본인의 진짜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연기하기 어렵다고.
이 말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속마음을 더이상 감추지 않고 표현할 텐데... 시빌 베인의 모습이 멋있었는데, 이를 매몰차게 차 버리는 도리언의 모습에서 실망을 느꼈다. 역시 잘생긴 애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부럽다)
3. 우발적 행동
도리언을 걱정해주는 바질을 만난 도리언은 이 모든게 그가 그려준 초상화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하게 된다. 요즘 내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리에서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렇지만, 내 안의 '착한 사람 콤플렉스'로 인해 화를 내지 못하고 삭히는 경우가 많다. 언제부터인가 살아가는 데 화를 내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사회가 가는 것 같다. 화를 내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 분출할 때가 있어야 하는데... 분출하지 못하다 보니, 가장 소중한 가족에게 짜증을 내는 것 같다.
녹음을 하면서, 화와 짜증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이 두가지는 정말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조금은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충분히 긍정적인데...?ㅋㅋㅋㅋㅠㅠ)
4. 죽음에 대한 두려움
네 번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첫번째 키워드인 젊음과 비슷한 맥락에서 보면 될 것 같다.
19세기에 쓰여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네가지 키워드가 2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똑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인 걸로 보아, 이 책이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좋았다.
인상 깊었던 문장
이 책은 유난히 마음에 드는 문장이 많았던 책이다. 하나씩 적어보려 한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먼저 늘 자신을 속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끝날 땐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으로 끝나지. 그게 바로 이 세상이 로맨스라고 부르는 것일세.」
「누굴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야 하는 거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좋게 여기고 싶어 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야. 낙관주의의 바탕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공포라고. 우리는 이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관대해질 수 있는 거야.」
「선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네.」
「훌륭한 결심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그건 그런 결심이 늘 때늦게 이루어진다는 것.」
「자신의 삶을 지켜보는 관객이 되는 것이 삶의 고통을 피하는 방법이거든요.」
「아름다운 그의 집에 수집해 놓은 그 모든 것이 어느 한 시절 그에게는 망각의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 그런 열중이 때로는 그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두려움을 잊어버리거나
그 두려움을 회피하는 방법이 되었던 것이다.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한계를 짓는 것에 불과해.」
「아는 게 병이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불확실성이거든. 안개가 사물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잖아.」
「지난 일은 생각하지 않는 게 나았다. 그 무엇이 지난 일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자신이었고 그의 미래였다.」
알림장
오늘도 힘들었어. 속상한데, 누구한테 말하기는 그래.
내 방 책상에 앉아 일기를 적는다. 10분, 20분 일기를 적고 나면 친구에 기대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듯 마음 한 편이 편안해진다. 시시콜콜한 내용부터, 가족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고민까지. 매일 검은 잉크로 채워지는 일기장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다른 사람에게 나는 모범적인 사람으로 비쳐야 한다. 나의 본모습을 보이는 것은 치부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직장에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나를 감추고 가면을 쓴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수록 내 가면의 두께는 얇아진다. 그럴수록 일기장은 빽빽해지고, 가면 속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다.
두려움을 견디지 못한 나는 일기장을 태워버렸다.
이제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한 줄 평
도리언의 일그러진 초상화 ★★★★☆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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