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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페르시아 문학으로 죽음을 생각하다, 사데크 헤다야트 『눈먼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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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페르시아 문학으로 죽음을 생각하다, 사데크 헤다야트 『눈먼 올빼미』

 

#1. 작가 소개

사데크 헤다야트 (1903 - 1951)

 - 이란의 소설가로, 1903년 테헤란의 귀족가문에서 출생

 - 1925년 국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학업보다는 유럽의 예술과 문학에 전념했다.

 - 그 당시 <말테의 수기>를 읽고, 릴케가 죽음을 찬양하는 것에 감명받아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결국 48세의 나이에 프랑스 파리에서 가스로 자살하게 된다.

 - 20세기 아랍을 움직인 50인에 선정되었다.

 

 

 

#2. 책 소개

『눈먼 올빼미』

 - '페르시아로 써진 가장 중요한 문학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힘

 - 고독한 필통 뚜껑 장식사가 벽에 비친 올빼미 모양의 자신의 그림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 초기 출간 당시, 독재 정권 치하의 이란에서는 출판이 금지되었다가 1941년에 테헤란 일간지에서 연재되었다.

   강렬한 반응과 논란으로 인하여 다시 출간 금지되어 지금까지 금서로 지정되어 있다.

 

 

 

#3.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할 이유

첫째, 삶을 끝내게 만드는 책이다.

포로키스타 카카푸르의 서평 제목이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떠오른다. 자살을 앞둔 사람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다만 그들을 감정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 보다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또한, 알 수 없는 문장들의 반복 등으로 인하여 괜찮았던 나의 마음까지 불편해진다. 행복한 것들을 생각하기에도 바쁜 우리에게 우울한 면까지 굳이 찾아서 읽어야하나 싶기도 하다. 

 

둘째, 페르시아 문학이나 특별한 것이 없다.

페르시아 문학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특별할 것이 없다. 『눈먼 올빼미』에 페르시아 문화요소가 많이 투영된 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셋째, 자살을 옹호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의 마지막장까지 읽고 나서 든 결론이다. 그래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감정이 극으로 간 사람의 심리를 서술하면서 ~~ 면도 있으니 이해해달라.'인가? 정확히 『눈먼 올빼미』를 통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궁금하지만 딱히 계속되는 질문이 떠오르지 않는다.

 

 

#4. 어떻게 읽었나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이 가지 않았던 소설이었지만, 그렇기에 더 좋았던 소설이었다. 이 책을 읽고 자살을 한 사람이 많았다고 하는데, 난 삶에 대한 의욕이 넘치는 사람인가보다.

 

전반적으로 주인공의 독백 자체가 너무 어둡고 내면 속으로 자꾸 파고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부정적인 감정의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 그 감정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사데크 헤다야트는 서술을 정말 잘한 것 같다. 현실에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그저 '그럴 수 있어. 힘내'라는 말고 말 뿐인 위로를 해줄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앞서 말했지만 페르시아 문학을 처음 읽었다. 그렇지만, 번역가님이 공경희님으로 인 것으로 보아 영어 → 한국어 번역을 읽었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과연 페르시아어 → 한국어 번역을 했다면 사데크 헤다야트의 세밀한 감정 묘사가 더 잘 표현되었을까란 막연한 궁금증이 생긴다.

 

작가의 말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적혀 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책만이 좋은 책인 것은 아니다. 한두 사람에게라도 영혼의 심층부에 가닿는 책이 더 좋은 책이다.” 나에게는 해답 없는 물음만 많이 준 책이라 조금은 아쉬웠다.

 

 

 

#5. 인상 깊은 문장

151p. 나의 가망 없는 사랑을 채워 줄 쾌감을 찾는 것이 일종의 강박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단지,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야된다고 느낀 경험이 있는가? 사랑을 나누는 본질은 무엇일까?

 

 

#6. 한 줄 평

어둡고 우울한 자기 독백의 소설 / ★★★☆☆ (3/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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